이선미 칼럼니스트
고양생명의전화 상담 매니저, 심리학자
언제부턴가 스마트폰을 거의 손에서 놓지 못하는 필자 자신을 보면서 자괴감 아닌 자괴감이 들기도 한다. 본래 책을 좋아하고, ‘멍때리기’ 속에서 나름의 사유공간을 발견하곤 했는데, 요즘은 그것이 마음처럼 잘 되지 않는다. 그렇게 스마트폰을 들여다보고 있다보니 새삼스레 AI와 디지털기술에 경악을 금치못하곤 했다. 필자가 즐겨 클릭하는 분야와 데이터 섹션을 미리 꿰뚫고 있다는 듯, 분명 알고리즘이 조종한 콘텐츠와 화면이 이어진다. 스스로 선택한 것이 아니긴 하지만, 대부분 취향에 딱 들어맞는 것들이다. 속절없이 들여다보면서도 찜찜한 기분은 어쩔 수가 없다.
인공지능은 이제 실생활 구석구석에서 사용되며 자연스레 우리와 친숙해졌다. 수많은 생활용품과 기기에는 미처 우리가 인식조차 못하고 있는 AI기술이 심어진 경우가 많다. AI가 없던 시대엔 불편해서 어떻게 살았나 싶을 정도이다. 우리 시대의 삶 자체를 AI가 대체하는 듯하다. 그에 비례해서 인공지능이 저지르는 오류와, AI에 대한 맹신이 빚는 일그러진 풍경들도 헤아리기 힘들만큼 많다.
자율주행 자동차의 인공지능 시스템이 도로 상황을 잘못 인식해 발생하는 사고도 잊을만하면 일어난다. 의료분야에선 인공지능이 환자의 진단을 잘못해 오진을 내리거나 중대한 질병을 놓치기도 한다. 이처럼 AI가 실수나 오류를 저지르면 그 피해는 상상할 수조차 없다. 대형 사고나 사이버범죄에 의한 피해, 혹은 심각한 인명 피해나 막대한 재정적 손실이 발생할 수도 있다.
어차피 한계가 많은 인간이 만든 것이므로, 그럴 수 밖에 없으려니 싶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지런히 제도적, 기술적 대응책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그런 ‘하드웨어’ 차원의 대비만으로는 부족하다. 좀 한가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인공지능에 대한 본질적 접근이 중요하다. 애시당초 인공지능에 대한 맹신부터 극복해야 한다. 인간사회 자체가 불신으로 가득한데, 그처럼 서로 믿지못하는 인간들이 만든 도구에 대한 무한 신뢰란 있을 수 없다. 사용자들부터가 AI가 제공하는 것이면 무조건 수용할게 아니라, 그 정보와 서비스의 여백에 숨은 의미와 가치를 신중하게 읽어내야 한다. AI라는 도구가 발달할수록 중요한 건 ‘인간성의 회복’이라고 할까. 인공지능에 대한 주체적 각성과 분별이 그 어느 때보다 소중한 지금이다.
특히 2023년을 되돌아보면 더욱 그러하다. 올해는 세상이 온통 ‘생성형 AI’에게 장악당하면서, 인간과 사회가 심리적 ‘그루밍’에 허우적거리는 모습이었다. 훗날 AI문명을 되돌아볼 때, 2023년은 고생대 ‘캄브리아기’의 대폭발과 비교될 것이다. 챗GPT가 등장하면서 봇물터지듯 온갖 기기묘묘하고 다재다능한 AI기술이 쏟아졌다. 사흘이 멀다하고 인간의 언어로 된 방대한 데이터를 가공한 대규모 언어모델들이 무늬만 바꾸며 줄줄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야말로 ‘생성형 AI’가 홍수를 이루며, 인간보다 앞서고 싶은 그들만의 잔치를 벌인 것이다.
모든 기술문명이 그러하듯이, AI기술이 변형되고 진화를 거듭할수록 인간 삶의 모습과 질서도 뒤틀리거나 깨질 수 밖에 없다. 그래서 중요한 것이 인간과 기계에 대한 주체적 각성이다. AI와 그 배후의 감춰진 의도와 실체에 대한 분별이 그것이다. 얼마 전 오픈AI의 이사진들이 ‘AI 개발 속도전’을 펴는 샘 알트만을 내쫓으려다 실패했다고 한다. 오픈AI의 이사진들의 심정이 그랬을까. 단언할 수는 없지만, 그들 중 누군가는 분명 기술문명에 의한 인간소외를 심히 두려워했을 것이다.
내년에는 생성형 AI보다 몇 수 위의 인공지능이 등장할 수도 있다. 이 정도 속도라면 AI문명이 인간을 지배한다는 극단의 상황이 예상보다 훨씬 앞당겨질지 모른다. 그렇다고 브레이크없는 고속열차처럼 내달리는 AI기술에 막연히 우리의 영혼을 내맡길 수는 없다. 데이터에 기반한 정확성과 편리함에만 취해있다간 그저 AI학습과 모델의 소재가 될 뿐이다. 그렇지 않으려면, AI가 작동하는 문법에 대해 늘 질문하고, 그것을 만든 또 다른 인간들의 의중도 부지런히 파헤쳐보아야 한다. 나아가선 AI 주도의 기술문명에 대한 고쳐쓰기를 게을리하지 않아야 할 것이다. AI의 주인은 ‘인간’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출처 : 중소기업투데이 http://www.sbiztoday.kr/